나는 내 인스타 계정 팔라는 제안 많이 받았다. 외국인들로부터. 팔로워가 많은 것도 아닌데, 마이크로 인플루언서도 안 되는 내게 그런 제안을 하는 이유는 인스타 아이디 때문. 외국애들은 handle 이라고 부르더라. 팔 생각 자체가 없었던 시절에는 아예 무시하다가 궁금해서 얼마에 사갈래 했더니 여러 대답들이 나오더라. 최고가가 1,000달러까지였었는데, 그래도 팔고 싶은 생각 없었다.
그러다 한동안 인스타 하지도 않고, 인스타 뭐 의미도 없는 거 같고 그래서 그냥 이것 저것 둘러보는 모니터링 용도로 활용하다가 어떤 미국 흑인이 5,000달러를 제시하네. 생각해보겠다고 했지. 이 정도면 할 만한데 하는 생각에. 그렇게 컨택된지 6개월 정도 만에 팔았다. 그냥 장난인 줄 알았는데 계속 연락 오더라고. DM으로. 그러다 어떻게 거래할 거냐를 두고 논하다가 에스크로를 이용하자고 했고, 지가 알아보더니 escrow.com 에서 거래하자고 하더라.
근데 난 사기꾼 같은 느낌이 들어서 일단 안 했지. 근데 마지막으로 얘기하더라고. 거래 안 할 거 같으면, 자기는 다른 인스타 아이디를 사겠으니 어떻게 할 거냐고. 그래서 한다고 했지. 그리고 거래 완료한 거다. 걔도 나를 못 믿었고, 나도 걔를 못 믿어서 혹시나 하는 생각에 문제될 부분들을 서로 알아보다가 나중에 협의해서 결국 돈 입금까지 다 받았다.
아이디
identifier
내 아이디는 artofwar 였다. 무슨 뜻으로 만든 거냐면, the Art of War. 정관사는 빼고 한 거였지. '전쟁의 미학' 즉 '손자병법'이란 뜻이다. 이걸 외국에서도 아는지 모르겠는데, 나는 DM 같은 거 거의 써본 적이 없는 사람인데, 항상 DM 요청 수락하라고 뜨면 죄다 아이디 팔라는 얘기였거든. 팔로워는 660명 정도? 팔로워만 보면 저 가격에 거래할 사람 아무도 없지. 오직 아이디 때문에 그런 거였다. 네이밍 한 번 잘 해서 그냥 5,000 달러 번 셈. 그렇다고 팔려고 만든 것도 아니었는데. 그냥 내가 좋아해서 그렇게 명명한 거였을 뿐.
에스크로
Escrow
에스크로는 escrow.com 을 이용했다. 이건 그쪽에서 알려준 사이트인데, 사이트를 운영하는 회사가 문제가 없는 데인지 다 체크해보고 괜찮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렇게 하자고 했다.
단계는 총 5단계다.
1단계에서, 일단 구매자가 개설하면, 판매자가 거기에 동의를 한다. 근데 이 과정에서 본인에 대한 입증을 해야 하는데, 몇 번 거절 당했다. 주민등록증만으로 안 되고 또다른 입증을 해야 하는데, 내 주민등록증에는 사는 곳의 주소가 안 적혀 있어. 그래서 몇 번 거절 당하다가 주민등록등본 영문 버전을 인터넷으로 발급받아서(이 때가 구정 때라 한참 기다렸다.) 그걸 제출하니까 되더라. 나름 확실한 신원 확인을 하는 듯. 거기다가 입금 받을 은행 계좌 등 입력해야 하고. 나는 원래 기업은행 외환계좌가 있는데, 이번에 카카오뱅크 달러박스 만들어서 그걸 입력했다.
2단계에서는 내가 할 게 없다. 구매자가 돈을 입금해야 하고. 우리가 약속한 5,000달러 입금되기를 기다렸다. 입금하고 나면 메일 날라온다. 다음 단계로 넘어간다고.
3단계가 가장 중요하다. 내가 인스타 아이디를 넘기는 방식이 개인 정보를 바꾸는 거였다. 즉 개인 정보에 이메일을 구매자의 이메일로 바꾸고 패스워드 변경해서 줬다. 내가 쓰는 패스워드는 다른 데도 쓰다 보니 변경해서 넘겨주면서 패스워드 바로 바꿔야 내가 접속 못한다고. 패스워드로 로그인이 되면 잘 받았다고 에스크로에서 처리해달라고. 그 사이에 팔로잉은 다 지우고 포스팅도 지우고, 좋아요는 다 못 지웠다. 하루에 지울 수 있는 maximum이 있더라고. 내가 단 댓글 다 지우고, 스크랩해둔 거 다 지우고, 보관함에 있는 거는 너무 많아서 안 지웠다. 뭐 다 내 사진이니 맘껏 보라 그래 그런 생각에. 지운다고 지워도 너무 시간이 걸리니까. 또 지워봤자 인스타 휴지통에 30일 있다가 지워지니 내버려뒀다. 휴지통에 있는 거 안 지워지던데? 방법이 있나 싶지만 있다 해도 보관함 사진 다 지우기 힘들어서 그냥 내버려뒀다. 다 내 사진이고 이상한 사진 없으니까.
이 과정을 그럼 내가 흑인이랑 대화하면서 했을까? 물론 대화 되지. 챗은 더 잘 하고. 근데 걔가 한국인 친구한테 부탁해서 3자 대화했거든. 카톡으로. 그러면서 중간 중간 과정에서 얘기하고 보이스톡하고. 3단계 넘길 때는 1시간 넘게 보이스톡하면서 인증번호 갔으니까 확인해봐라. 불러달라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넘겨줬다고. 만약 얘네들이 사기꾼이다. 그러면 인스타에 해킹 당했다고 얘기하면 되니 그거 염두에 두고 진행했지. 넘기고 나니 3단계 처리해주더라.
4단계가 되면 검증 과정이다. 받은 물건에 이상이 있는지 없는지 확인하는 과정. 보통 escrow.com 에서는 48시간 정도가 기본 셋팅인데, 내가 24시간으로 하자고 했고 동의해서 그렇게 진행했거든. 그래서 24시간 이내에 별 문제만 없으면 됐다. 그리고 24시간이 지나니까 메일 날라오더라.
그리고 얼마 안 있어서 카톡으로 송금 사실이 날라온다. 카카오뱅크 달러박스로 설정해둬서.
카카오뱅크
Kakao Bank
카톡에서 보고 카카오뱅크 앱으로 넘어가면 상단에 해외송금 받기 요청 안내가 보인다. 클릭.
근데 왜 달러박스에 입금이 안 되고 바로 카카오뱅크 계좌로 입금되지? 난 달러로 갖고 있으려고 했는데? 여튼 escrow.com 수수료 20달러, 중개은행인 씨티은행에서 10달러 빼고 4,970달러를 적용환율 1439.02원으로 계산하여 입금된 게 7,151,929원이다. 아이디 하나 잘 만들어서 개이득봤네. 근데 팔려고 만든 아이디가 아니었는데, 인스타 의미 없어서 안 하려고 하다 보니 팔게 된 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