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 생활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냥 주말에 집에서 푹 쉬거나 카페 가는 거 말고 뭔가 새로운 걸 해봐야겠다 싶어서. 무얼 할까 하면서 일단 뭘 정하기 보다는 하나 둘씩 체크해보면서 찾아보자는 생각에 보컬 트레이닝을 떠올렸다.
왜 보컬 트레이닝?
태어나서 노래 못한다는 소리 들어본 적 없다. 물론 나보다 잘 부르는 사람이야 많지. 그러나 내가 못 부르지는 않는다. 다만 나는 나대로 아쉬움이 있다. 내가 원하는 정도의 고음이 안 된다. 이것도 컨디션에 따라 달라지긴 하지만. 내가 알고 있기로 남자 진성 최고음은 2옥타브 라다. 그래도 진성 최고음은 올라간다. 그러나 그 이상은 쉽지가 않다. 물론 어쩌다 하나의 음이 높게 올라가는 경우는 가능하다. 그러나 2옥타브 라 이상의 음이 연거푸 나오면 힘들어진다.
이런 걸 보면 내가 고음을 전혀 못 내는 건 아닌데, 부담이 되면 일단 목에 힘이 들어가고 그래서 안 되는 부분도 있는 거 같고. 그게 호흡이나 발성의 문제라 생각해서 보컬 트레이닝 받아서 내가 부르고 싶은 노래가 고음이라 할 지라도 소화할 수만 있으면 된다는 목표로 배우려고 한 거다.
숨고
숨고에 등록했더니 이리 저리 견적이 많이 오더라. 가격은 거기서 거기라 가격이 중요한 건 아니었고. 내가 원하는 걸 단시간 내에 해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한데 그거야 만나봐야 알 거 같아서, 일단은 가까운 데에서 트레이닝 가능한 사람을 픽했다. 일터 근처인 광교에서 연습실이 있다고 해서 선택했지. 뭐 보컬 트레이닝하는 사람이면 나보다야 잘 하겠지만, 사실 가르치는 건 교육받는 상대를 잘 파악해서 가르쳐야 하기 때문에 보컬을 잘 하는 거랑 잘 가르치는 건 별개라 본다.
수원연습실
수원연습실이라고 검색해보면 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이게 본인의 연습실이 아니라 대여 가능한 연습실이더라. 처음에 찾아가는데 좀 복잡해. 조금 헤맸네. 얼마인지 나중에 검색해보니까 1시간에 5,000원이더라. 방은 3개가 있는데, 그닥 좋다고 할 순 없다. 어떤 느낌이었냐면, 노래방이라는 게 최초에 나왔던 시절 그러니까 내가 중학교 2학년 때인가? 그러니까 33년 전? 그 때 오락실 한켠에 있는 노래방 부스 느낌이었다. 그런 게 3개 있더라.
일단 트레이너와 함께 1번방에 들어갔는데, 이건 내가 생각했던 그런 그림이 아닌데. 내가 생각했던 그림은 선생님이 키보드 앞에 있고 옆에서 나는 마이크에 노래를 부르는 어둑한 연습실을 생각했는데, 밝은 등 아래에 피아노 하나가 있는 작은 부스였다. 음. 그래서 처음 만나자마자 내가 생각했던 그림이 아니라고 얘기했었지. 그런 건 녹음하기 위한 연습실인데, 그런 건 다른 데 있어서 미리 얘기했으면 그런 데로 예약을 했을 거라고 한다.
보니까 여기는 학원을 운영하지 않는 개인 교습을 위한 대여 공간인 듯. 근데 그닥 좋지가 않아서 나는 추천하지는 않는다. 물론 배우는 데에 있어서 장소가 중요한 건 아냐. 하지만 피아노면 모르겠는데, 노래할 분위기가 안 나. 집에서 혼자 부르는 거면 모르겠는데, 생판 처음 보는 사람 앞에서 마이크도 없이 그냥 불러야 한다고 하니 아 적응이 안 되네.
요구사항
트레이너는 내가 고음만 터득하면 된다고 했더니 오래 배우실 생각이 없냐고 하는 거다. 아마도 트레이너는 오래 배울 사람을 확보해서 안정적인 수익을 창출하려고 하는 듯 여겨졌다. 그러나 그건 본인의 지향하는 바이고, 내가 지향하는 바는 나는 내가 원하는 목표만 달성하면 된다. 그래서 몇 개월 생각하냐고 하길래, 내가 나는 습득력이 빠른 편이라 얼마가 될 지는 모르겠지만 빠르게 원하는 걸 달성하려고 한다고 했지.
노래 테스트
일단 준비한 곡부터 들어보자고 하더라. 없다고 했다. 그냥 평소에 부르는 노래 갖고 부르겠다고 했지. 노래방 가면 오늘 노래가 되는지 안 되는지 확인할 때 부르는 노래부터 부르기로 했는데, 이게 안 나온다. 1평도 안 되는 조그만 부스에서 밝은 등 아래에서 트레이너랑 마주 앉아서 마이크도 없이 노래를 부른다는 게. 입이 안 떨어지더라. 내가 낯가리는 사람도 아닌데 말이지. 반주는 핸드폰에서 유투브로 찾아서 틀어주더라. 그래도 음악을 틀어주니까 시작하기는 했다.
첫 노래는 izi의 '응급실'. 다 부르고 나니 나더러 묻더라. 이거 부르는데 어려운 부분 있었냐고. 전혀 없다 했지. 이 정도는 항상 부르는 노래라 그리 어렵지 않다고. 조금 높은 노래는 키낮춰서 부르곤 한다고. 예를 들면 윤종신의 '좋니'. 그랬더니 그거 한 번 불러보라고 한다. 그래도 한 번 부르고 나니까 조금 낫더라. 그래서 불렀지. 다시 묻는다. 이거 부르는데 어려운 부분 있었냐고. 전혀 없었다 했지. 게다가 후렴구에 고음 부분이 있어서 2키 낮춰서 불렀는데, 오늘은 노래가 되는 날이니 원키로 불러도 문제가 없을 거 같다고. 고음 부분이 내가 원하는 만큼 시원하게 소리를 못 냈다고 했지.
절대 안 올라가는 노래가 있다고 했다. 한경일의 '슬픈초대장'. 그러니까 그거 불러보라고 한다. 불렀지. 근데 그 날은 트레이너 앞이라서 그런지 아니면 노래가 되는 날이라서 그런지 모르겠는데, 다 올라가네. 참고로 '슬픈초대장' 최고음이 3옥타브 도#이다. 이 부분은 약간 부담스럽기는 했지만 그래도 무난하게 잘 넘어가더라. 두 군데 조금 부담되는 고음이 있었고 나머지는 다 올라가더라. 오늘은 노래가 되는 날이라 했다.
평가
좋은 보이스를 가졌다고 한다. 그리고 피아노를 치면 마로 따라해보라고 한다. 도레미파솔파미레도를 마마마마마마마마마로 하란 소리. 도레미파솔파미레도, 레미파솔라솔파미레 식으로 계속 올리더라. 그러다 딱 안 되는 부분이 2옥타브 시. 내가 그랬잖아. 2옥타브 라까지는 된다고. 나보고 음감은 있다고 하더라. 소리의 높낮이를 그 음에 맞춰서 잘 따라한다고. 그러더니 이제는 얼마나 낮게 부르는지 아래쪽으로 내려가더라. 그러더니 생각보다 음역대가 넓다고 하대.
그러더니 묻더라. 비브라토는 저절로 나오는 거냐고 그러대. 비브라토가 바이브레이션 말하는 거다. 내가 조절하는 거라고. 노래를 듣고 어떤 포인트에서 힘주고 어떤 포인트에서 힘빼고 어떤 포인트에서 비브라토 넣을 지 조절한다고. 결국 나보고 어떤 보이스를 갖고 싶냐고 한다. 고음이라고 하더라도 보이스에 따라 다르다고. 나는 락가수들과 같이 시원하게 지르는 고음을 하고 싶다고 했다. 김종국이나 KCM과 같은 남자 새끼가 모기 소리 내는 거 싫다고 했다.
근데 고음을 내면 목소리가 가늘어질 수 밖에는 없는데, 남자다운 목소리를 좋아하고, 현재 나는 그런 목소리는 아니라고. 사실 원래 내가 허스키한 목소리 그러니까 목소리에 스크래치난 듯한 목소리로 노래를 불렀었다. 박상민, 김정민 뭐 이런 식으로. 그런데 그런 소리로 노래를 부르면 목이 금방 간다. 언제부턴가 그렇게 안 부르고 부르기 시작해서 지금은 그렇게는 안 부르긴 한데, 나는 가시내 같은 목소리가 아니라 고음이라도 시원하게 소리가 나오는 걸 원했지.
그런데 그럴려면 소리길을 찾아야 하고, 호흡법을 알아야 한단다. 나는 일단 고음이 되고 나면 그 다음에 같은 고음이라고 하더라도 좀 다른 식의 고음을 구사하고 싶은 니즈가 생기지 않을까 싶다고. 일단 고음이 되게끔 해줬으면 한다고 했지. 결국 소리길과 호흡법부터 본인은 가르치려고 하는데, 그게 맞으면 하는 거고 아니면 자신에게는 트레이닝 받는 건 아닌 거 같다고 한다. 다른 트레이너들도 테스트를 좀 해보고 생각해보시라고 하더라.
결론
돌아와서 가만히 생각해봤다. 내가 가수를 하려고 하는 건 아니지만, 지금보다 나은 그러니까 일반인들 수준에서 잘 부르는 정도가 아니라 그보다는 조금 더 나은 수준이 되게 하려고 하다 보니 고음이 처리가 필요했던 건데, 그래도 50분 밖에 안 되었지만 몇몇 팁들을 캐치했다. 나보고 중간에 그러긴 하더라. 왜 내가 습득력이 빠르다고 그러는지 알 거 같다고. 한 군데 더 테스트해볼까? 그런 생각도 들긴 했는데, 요즈음 유투브에도 많잖아. 그냥 독학할까?
내가 항상 뭘 배울 때는 다 독학이거든. 근데 보컬 트레이닝을 배우려고 했던 건, 피드백을 받으려고 한 거고, 그러면 좀 더 빨리 배울 수 있지 않을까 했던 거지. 게다가 독학은 꾸준하게 하기 힘들기도 하고 말이지. 고민되네. 일단 이 트레이너는 나랑 안 맞는 건 아닌데, 좀 질질 끌 거 같은 느낌? 그런 느낌이 들어서 좀 다른 트레이너한테 테스트를 받아보고 최종적으로 보컬 트레이닝을 받을 지 말 지 결정해야겠다.
지금 보컬 트레이닝 말고도 피아노도 레슨 받으려고 생각하고 있다. 키보드 사서 연습하면서. 치고 싶은 곡들이 있거든. 초등학교 5학년 때 체르니 30번의 16번까지 치고 말았고, 그 이후로 단 한 번도 피아노 쳐본 적이 없는데. 일단 키보드 사서 연습 좀 하다가 레슨 받을까 싶기도 하고. 그러다 안 하면 차라리 돈 주고 레슨 받으면 되니까. 지금은 레슨 받아도 하도 오랜만에 치게 되는 거라 어느 정도 연습하고 가는 게 낫지 않을까 싶고 그러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