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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기성복의 치수를 얘기할 때, 이렇게 얘기하곤 한다. 나는 100 사이즈 입어, 나는 XL 사이즈. 내 신체 치수를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이렇게 하나의 사이즈로 우리의 치수를 표현한다. 단순화시켜 편하긴 하다. 그러나 같은 100 사이즈라 하더라도 누구한테는 잘 맞는 반면 누구한테는 잘 안 맞는 경우도 있다. 어쩔 수 없다. 단순화시켜서 그렇다. 같은 100 사이즈를 입는다 하더라도 입는 사람마다 어깨 너비, 소매 기장 등은 저마다 다르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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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 시즌마다 기성복을 만들어 파는 업체의 경우에는 제작한 옷이 판매되지 않을 경우에는 손해가 막심하다. 그래서 어떻게 해서든 팔아야 했고, 자사만의 차별성을 내세웠다. 그게 디자인적인 부분만 있는 게 아니라 핏도 그렇다. 우리가 100 사이즈라고 하면 모두 같은 치수라고 생각하지만 회사마다 치수가 저마다 틀리다. 즉 A 회사의 100 사이즈와 B 회사의 100 사이즈는 어깨 너비가 다르다거나 소매 기장이 다르다거나 조금씩 틀리단 얘기.
물론 사람의 판단에 영향을 미치는 가장 큰 요소는 시각이다. 그래서 디자인이 가장 중요하지. 뭐가 어떻든 간에 봤을 때 '멋지다'는 생각이 들면 사고 싶거든. 그렇게 눈에 보이는 부분이 중요하지 않다는 건 아니다. 제일 중요하지. 그러나 그것만 있는 건 아니라는 거다. 입었을 때 얼마나 편안한가, 얼마나 맵시가 있는가 하는 부분이 핏이기 때문이다. 뭐 이건 나중에 패션의 3요소를 통해서 언급을 하겠지만 여튼 그래서 저마다 회사는 나름의 핏이 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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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어떤 이는 나는 이 브랜드의 옷이 나에게 잘 맞다고 느껴지는 경우가 있다. 그게 디자인적으로 내가 선호하는 옷을 만드는 브랜드라 그런 경우 말고 입었을 때의 착용감 뭐 그런 의미에서 하는 얘기다. 그게 앞서 언급했듯 회사마다 조금씩 차이가 나는 치수 때문인데 그 브랜드의 치수가 나에게는 잘 맞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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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이런 의미에서 패션 산업은 원래부터 빅 데이터를 활용했다. 인간의 신체 치수를 단순화시켜서 90, 95, 100이라는 수치로 표현하기 위해서는 그럴 수 밖에 없고 얼마나 많은 이들이 어떤 치수에 속하는 지를 알아야 제작 물량을 효율적으로 배분할 수 있다. 예를 들면 현재 만드는 옷이 30대를 겨냥한 제품인데 우리나라 30대의 50%가 100 사이즈라면 100 사이즈 치수의 옷을 제일 많이 만들어야 하지 않겠냐는 거다.
나는 주변 사람들한테 종종 얘기하곤 한다. 기술 그 자체로는 의미가 없다. 기술이 어떻게 활용하느냐는 게 중요하지. 마찬가지다. 빅 데이터도 빅 데이터 그 자체만으로는 의미가 없다. 그것에서 뭔가 의미 있는 데이터를 도출했을 때 유의미한 것이지. 근데 요즈음은 빅 데이터, 인공 지능 뭐 이런 말을 써야만 투자가 잘 되는 모양이다. 정부 지원책의 내용을 훑어봐도 그렇고. 그러다 보니 개나 소나 다 그런 말을 갖다 붙인다.
패션 스타트업 중에도 그런 데가 더러 보인다. 미안한 얘기지만 패션 산업 자체가 원래부터 빅 데이터를 활용했었다. 새삼스럽지도 않은 걸 빅 데이터란 말을 앞세워서 얘기하는 거 보면 쟤네들은 투자 받으려고 저러는가 싶은 생각이 든다. 본질에 집중하지 않고 그런 마케팅을 하는 업체를 보면 대충 답이 나온다. 음. 회사가 상품이군. 나중에 회사 M&A 해서 돈 벌려고 하는 모양이란 얘기다. 대부분 그런 회사의 사업 모델은 외국에 있는 거 카피캣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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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기성복도 잘 맞아 굳이 맞춤복할 필요 없어 하는 이들도 있다. 나도 수긍한다. 나도 기성복만 입어도 잘 맞으니까. 우리나라 평균적인 신체 구조라면 그렇다. 뭐 배가 많이 나왔다거나 팔이 많이 길다거나 하는 식이 아니라면 기성복도 잘 맞다. 다만 기성복과 맞춤복은 옷의 맵시가 틀리다. 나도 맞춤복 입어보고 나니 확실히 틀리다는 게 느껴지더라. 내 몸에 맞는 옷이라는 게 어떤 건지 말이다.
옷을 본질적인 의미에서 입는 이들이라면 사실 이게 무슨 상관이냐만 패션이란 의미를 더한다면 얘기가 좀 틀려진다. 이왕이면 멋지게 보이면 좋다고 생각하는 건 누구나 마찬가지 아닌가? 그냥 본질적인 의미에서만 입는다면 스티브 잡스나 마크 주커버그처럼 같은 옷 여러 벌 사서 그것만 주구장창 입어야지. 적어도 나는 그렇게 살고 싶은 생각 추호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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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보기에 우리나라 패피들은 어떤 개념을 가진 게 아니라 믹스 앤 매치, 카피 캣 그런 경향이 강한 거 같다. 무신사 같은 데서 올려놓은 사진 보면 운동화에 치노 팬츠 입고 롱 코트 입고 비니 쓴 뭐 그런 스타일을 보고 멋스럽다고 하는 게 나는 이해가 안 가더라. 그건 멋스러움이 아니라 아무렇게나 입어도 그렇게 된다 생각하는데. 또한 인스타그램에서 양복쟁이들(양복을 만드는 이들)의 옷을 보면 '와 저거 나름 자랑하려고 올린 건가?' 싶은 사진들이 있다. 아재 패션의 극을 보여주는. 나는 이해가 안 가더라. 왜 우리나라에는 나폴리 식의 멋스러움을 가진 이들이 없는 거지? 단순히 유행하는 스타일을 믹스 앤 매치하는 패션, 핏에만 집중한 아재 패션 그게 내가 느낀 우리나라 남성 패션이다. 내가 바꾸고자 하는 건 바로 그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