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벤처 사업 시절에 군대 때문에 대표이사를 사임한 후에 읽어던 첫 책이 '위대한 2인자들'이라는 책이었다. 이 책을 읽었던 이유는 이제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서 나는 내 회사(내가 창업했고 내가 대주주로 있었던 회사)를 서포트하는 식이 되어야 했기 때문에 과연 리더와 참모는 어떻게 다른가? 참모로 뛰어난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인가를 알고 싶어서 읽었던 책이었다. 사실 나는 그 때 투자자들이 섭외한 대표이사를 맘에 안 들어했었다.
당시 내가 몇 %의 주식을 갖고 있었는지는 정확하게 모르겠다. 만약 2/3 이상을 들고 있었다면(내 기억으로는 그 비스무리하게 들고 있었던 거 같은데) 아무리 이사회에서 대표이사 물러나라고 하더라도 사임을 시킬 수가 없었겠지만 기억이 나지 않는다. 여튼 투자자들은 경험에서 오는 노련함을 이유로 그 사람을 대표이사로 하자고 했고(투자자들 선배였다. 고대 출신인가 그랬을 거다 아마) 나는 이해가 안 갔지만 그냥 뜻에 따랐을 뿐이다.
내가 왜 그 대표이사를 맘에 안 들어했냐면 성향의 문제가 아니다. 나와는 사뭇 다른 성향을 갖고 있었지만 그 사람이 그렇게 노련하다면 그 사람이 운영하는 회사는 왜 그 모양 그 꼴이냐는 게지. 나는 못 미더웠다. 그리고 2개월 뒤, 회사는 무너졌다. 그 대표이사는 회사 통장에 있는 돈을 개인 빚 갚는데 썼고, 들어오는 돈도 로비한답시며 쓰고, 줄 돈은 안 주다 보니 빚만 쌓였다. 2개월 만에 벌어진 일이었다. 투자자들도 그럴 줄은 몰랐었다. 다 속은 거였지.
나는 그 대표이사의 이름을 아직까지 기억하고 있다. 어찌 잊을 수 있겠냐고. 내 젊은 시절을 다 투자해서 만든 그 회사를 고작 2개월 만에 망가뜨렸는데. 아는 사람들이야 아는 얘기지만 모르는 사람들이 많을 거다. 나더러 젊은 놈이 잘난 체 하더니 꼴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거라고도 생각하지만 내막을 아는 이 없을 거다. 그냥 나는 그러려니 하고 말 뿐이지. 그 이후로 벌어진 일은 더 가관이었는데도 불구하고 그냥 얘기해봤자 나만 열불나지.
1인자, 2인자는 성향의 문제가 아냐
얘기가 옆으로 샜는데, 그 때 '위대한 2인자들'을 읽으면서 나는 어떤 생각을 했냐면 누가 1인자고, 누가 2인자인 게 핵심이 아니었다는 거다. 1인자와 2인자의 성향이 다르면서도 조화롭게 유지가 되는 게 중요했던 거지 1인자라고 해서 유해야 하고 그런 건 아니었다는 거다. 그래서 나는 그 때 내 스타일에 대해서 바꾸고 싶지 않았다. 사실 자신의 스타일(성향)을 바꾸는 게 그리 쉽지가 않다. 평생을 그렇게 살아왔는데 한순간에 바꾸려면 어떤 큰 계기가 있지 않고서는 쉽지가 않고, 그런 계기로 인해 바뀐다 하더라도 이내 다시 원상태가 되는 경우가 많다.
사람이라는 게 바뀌는 부분이 있는가 하면, 바뀌지 않는 부분도 있다. 그걸 잘 가려내는 것도 자기계발의 하나다. 내가 항상 강조하지만 무릇 자기계발이라 함은 자기 자신을 아는 데에서 비롯되는 거다. 자기 자신조차 모르는데 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해봤자 답은 뻔하다. 세상에 수많은 자기계발서들은 그렇게 사람들을 현혹시키곤 한다. 그렇다고 해서 그런 게 전혀 의미 없다는 건 아니다. 그런 노력 또한 자신의 한계를 깨우치게 되는 계기가 되니까 말이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살아왔던 내가 30대 중반에 조금 바뀌기 시작했다. 나는 리더가 아니라 참모라는. 이건 내가 동양철학을 공부하게 된 계기가 되었고 스승이 나에게 했던 말이다. 나는 "나를 따르라" 하면서 적진에 뛰어드는 장수라고 스스로 생각할 지는 몰라도 그러기 때문에 문제가 생기는 거라고. 나는 머리가 좋아서 "너는 이렇게 싸우고, 너는 이렇게 싸워라."하는 군사 역할이지 장수가 아니라는 거다. 그 말 한 마디가 내게는 충격이었고 동양철학을 공부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동양철학을 공부하면서 나를 돌아보고
내 인생에서 깨우침이라는 용어를 쓰는 시기가 두 번 정도 된다. 첫번째가 '도올논어'를 읽고 철학이라는 거에 빠져들었던 시기고, 두번째가 스승에게 그런 말을 듣고서 동양철학을 공부하면서다. 사실 동양철학을 배우기 전에는 스승이 아니었지만 배우게 되면서 스승이 된 거지만. 여튼 나름은 내 논리로 스승의 논리를 깨주겠다는 생각으로 공부를 해보자고 했던 거였는데(뭘 알아야 논리를 깨주지) 설득 당한 건 아니고 내가 공부하면서 깨우친 바가 있었던 거였다.
스승은 나더러 사업을 하면 안 된다고 했지만 나는 지금 사업을 하고 있다. 그러나 그 말의 의미를 잘 해석해야 한다. 사업이라는 행위 그 자체를 하면 문제가 된다는 게 아니라 내 성향이 어떻기 때문에 사업에서는 이런 약점이 있다는 걸 얘기하는 거다. 그걸 스승은 그렇게 표현할 뿐이고. 그렇게 가려 들을 수 있는 안목이 생기기 시작하더라고. 그래서 내가 왜 리더가 아니라 참모에 적합한 지를 이해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그게 30대 중반 정도였을 거다.
나는 요즈음 내가 부적격 리더라 생각한다
30대 후반. 이제 40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고 지금 내가 처한 상황에서 나는 이런 생각을 참 많이 한다. 나는 리더라기 보다는 전문가가 어울린다는. 일적인 면에서는 탁월하지만, 리더로서는 탁월하지 못하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는 얘기다. 다소 완벽을 추구하는 성향 때문에 아무리 일 처리가 빠르다고 해도 일을 만들어서 하고 그러다 보니 나는 내 일에 끝이 없다. 그런 사람이 리더가 되면 아랫 사람들이 고생인 법이다. 물론 많이 배우긴 하지. 뭐든 일장일단이 있으니까.
그렇다고 내가 마인드가 없는 사람은 아니지만(내 착각일까?) 몇몇 단점들이 부각될 때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나는 나중에 경영 일선에서는 물러나야될 사람이라는 생각을 참 많이 한다. 지금은 대안이 없으니 이러는 거지만 말이다. 사실 내 회사의 일은 내가 있어서 버티는 게 꽤나 많다. 그건 일로써 부딪혀보고 겪어보면 알 거다. 아무래도 내가 직접 하는 거와는 차이가 확연하고, 클라이언트는 내가 해주길 바라는 면이 많다 보니까.
그래도 잘 따라주는 직원들이 있어서 고맙고, 이러 저러한 우여곡절이 있긴 했지만 나름 비전을 찾아가고 있다는 것도 다행이다. 나름 올해부터는 내 몸을 다바쳐서 꼭 저기까지는 올려놓겠다는 생각이 강하지만 20대 벤처했던 시절과는 다른 게 내가 변해야 한다는 생각을 참 많이 하는 요즈음이다. 꼭 리더가 되기 위해서 변해야 한다는 게 아니다. 이미 언젠가는 나는 물러나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으니까. 단지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확실히 생각에 많은 변화가 생기긴 하더라고.
내가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다고 해서 내가 일을 안 하는 건 아닐 거다. 일 없이는 살 수 없는 나니까. 전문가로서 문제가 있으면 해결해주는 그런 역할을 해야할 듯. 단, 남들은 머리 싸매고 어렵게 생각하는 일을 웃으면서 신나게 해결해주는 그런 모습이 바람직 하지 않겠냐는 생각에 내가 변해야 한다는 거다. 내 인생을 돌아보면 나는 아웃사이더, 비주류가 적합한 사람인 거 같다. 그러나 항상 갖고 있는 생각은 주류를 능가하는 비주류. 단지 나서지 않을 뿐 실력으로는 뒤지지 않는다는 생각.
그런 생각들 속에 오늘도 나는 그런 생각을 해본다. 나는 리더가 아니라 전문가다. 단지 지금은 리더 역할을 맡고 있지만 언젠가는 여기서 물러나야 한다는. 리더는 똑똑할 필요가 없다. 똑똑한 사람을 거느리면 되지. 나는 내가 똑똑하다 생각해서 그런가(자랑질이라 생각해라) 똑똑한 사람을 본 적이 별로 없다. 다 나보다는 한수 아래인 듯 보이고 말이지. 그러니 리더가 안 되는 거여~ 그걸 알고 있기 때문에 언젠가 나는 이 자리에서 물러나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