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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독서

생생한 묘사에 넋이 나간 "파이 이야기"

파이 이야기
얀 마텔 지음, 공경희 옮김/작가정신

2008년 2월 6일 읽은 책으로 독서클럽 2008년 1월 문학팀의 독서토론을 위한 책이었다. 소설인지라 리뷰에 내용이 언급되긴 하지만 영화의 스포일러와 같은 부분은 전혀 없다. 그리고 읽고 난 감상이 많지 책내용에 대한 언급은 거의 없으니 책 보기 전에 읽어도 무방하다. ^^

총평

사실 독서클럽을 하지 않았다면 이 책을 읽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독서에서는 잡식성이긴 하지만 문학, 예술만큼은 예외다. 소설은 영화로 대체한다는 생각 때문에 지금껏 살면서 소설은 어렸을 때 책 좀 읽는 사람이라면 읽는 정도 수준의 유명한 소설이나 대학 본고사 시절의 논술을 대비한 국내 유명 소설들을 읽는게 다였다.

특히나 소설은 단행본 보다는 역사물을 좋아해서 시리즈로 많이 읽었지 이렇게 단행본을 읽게 된 것은 오랜만이 아닌가 싶다. 한 달에 한 권 정도는 소설을 읽다 보니 요즈음은 거의 영화를 안 본다. ^^ 어쨌든 의무감에서 읽은 것은 아니다. 그냥 읽고 싶었다. 아무래도 내가 세상을 살면서 지식적인 측면에서 모자란 부분을 메우기 위해서 말이다.

아마도 아는 사람들은 알겠지만(별로 아는 사람이 주변에 없다. 아직까지는) 내가 모자라는 부분이 바로 공감각적인 사고다. 그래서 문학이나 예술조차도 이성과 지성에 근거하여 판단하는 아주 미련한 짓을 하는 게 바로 나다. 그런 의미에서 나름 그 벽을 깨기 위해 요즈음 많은 생각보다는 많은 느낌을 받으려고 하고 있다. 그런 맥락의 일환으로 소설을 읽기 시작한 것이다. 감성을 자극시키기 위하여...

얀 마텔이라는 작가가 유명한 작가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책은 꽤나 유명한 책인 듯 싶다. "제34회 부커상 수상작"이라고 하니 말이다. 부커상이 무슨 상인가 싶어서 조사해봤더니, 영국에서 매년 영어로 씌어진 소설 중에서 가장 뛰어난 작품을 선정하는 문학상으로 영국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문학상이자 세계 3대 문학상(노벨 문학상, 공쿠르상) 중에 하나라고 한다.

띠지에는 이렇게 되어 있다. "<식스 센스> 나이트 샤말란 감독 영화 제작중." 내가 산 책이 초판 24쇄이고 그 인쇄를 한 때가 2007년 8월 8일이니 그 때 당시만 해도 영화는 제작중이었고 아직 그 영화는 나오지 않았으니 여전히 제작중인가 보다. ^^ 독서토론할 때 분명 영화로 각색이 되면 극적인 구성을 위해서 책 내용과는 다르게 어디에다 포인트를 둘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나오면 한 번 봐야겠다. 정말 그런 것인지... ^^

이 소설은 정말 묘사가 뛰어난 작품이다. 독서클럽 토론 끝나고 Linus님이 한 표현에 의하면 "바다 냄새가 코에 날 정도" 수준으로 묘사가 뛰어난 작품이다. 확실히 소설가들은 사물을 관찰하고 바라보는 시각이 다르고 그것을 글로 표현하는 수준이 남들과 다른 듯 하다. "방 안에 들어갔다. 깔끔한 방이다." 라고 표현해도 알아들을 말을 구석구석 수사적인 표현을 써서 깔끔하다는 것을 표현해주는 게 소설이다. ^^ 이러니 내가 소설과는 별로 맞지 않는 구석이 있었던 것 아닐까 싶다. 경영에서는 구구절절 말하는 것보다는 간략하게 핵심만 말하는 데에 익숙해져 있으니까 말이다.

그런 생각에도 불구하고 묘사가 뛰어나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정말 뛰어난 묘사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요즈음 한 달에 한 권씩 소설을 하나 읽지만 다른 소설과는 차원이 틀린 묘사. 어떻게 이렇게 생생하게 글로서 그려냈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그럼 작가는 재밌는 이야기를 하려고 이 책을 썼을까? 아니면 뭔가의 메시지를 담고자 이야기를 풀어나간 것일까?

작가의 의도가 무엇이건 간에 해석은 자유다. 예전에 어떤 작가의 얘기 중에 이런 게 있었다. 자신은 이렇게 적었는데 비평가들이 해석한 것을 보고 '오~ 이렇게도 해석이 되는구나' 하고 놀랐단다. 이렇듯 작가의 의도를 파악하는 것도 중요하긴 하지만 하나의 책이 하나로서만 해석이 되는 것보다는 여러 갈래로 해석이 되는 것이 담론을 펼치기에도 좋고 사유를 하는 데에도 좋다.

이런 의미에서 이 책을 재미로 읽으면 재미있는 소설이고, 메시지가 있다 생각하면 메시지가 있는 것이니 읽는 사람에 따라 다를 듯 하다. 어디에 포커싱을 두고 책을 읽느냐에 따라 매우 해석은 다양하게 나온다. 그 중에 몇몇만 짚어서 얘기를 할 뿐이다. 일일이 다 얘기하기에는 이 책은 너무나도 얘기할 게 많은 소설이다. 이게 소설이 가지는 장점이 아닌가 한다. ^^


주인공 파이

주인공 파이라는 소년은 캐릭터가 매우 독특하다. 소설에서 보이는 파이라는 아이는 매우 중립적이다. 이 말은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려고 노력하는 매우 순수한 아이라는 것이다. 물론 어린 시절에 안 그런 아이가 어디있겠냐만은. 그런 것이 잘 드러나는 것이 바로 종교를 받아들이는 모습에서다. 이슬람교, 힌두교, 기독교를 모두 받아들이는 파이. 그러나 어른들은 선택을 강요한다.

파이는 이렇게 얘기한다. "저는 신을 사랑하고 싶을 뿐이에요." That's all. 저자는 파이를 통해서 어쩌면 종교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얘기하고자 한 것은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나 또한 신이란 존재를 부정하지는 않는다. 허나 종교를 갖고 있지는 않다. 다만 집안이 기독교인지라 교회에 익숙하고 우리 나라 현실상 교회를 다니기는 쉽다보니 교회를 다닐 뿐이다.

살면서 사람은 틀에 갖힌 사고를 하게 된다. 틀에 갖혀봐야 틀에 갖혀있다는 것을 아는 것 또한 아이러니다. 그러나 대부분은 그 틀 속에서 사고를 하고 그 틀이 세상을 보는 절대적인 틀인양 착각을 하게 된다. 종교도 그런 틀의 하나일 뿐이다.

파이라는 아이의 캐릭터는 종교를 수용하는 모습에서 보이듯이 너무 순수해서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아이다. 그러나 파이라는 아이가 하는 말들을 가만히 듣다 보면 애어른이다. 이 때문에 작가인 얀 마텔은 파이를 통해서 하고 싶은 얘기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특히나 마지막에 실제 있었던 일을 얘기해달라는 일본 운수성 소속 해양부에서 나온 사람들에게 파이가 하는 말은 정말 기가 막히다.

오카모토: "한데 우리가 조사를 해야돼서, 진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고 싶어요."
파이: "진짜 무슨 일이 있었냐구요?"
오카모토: "네."
파이: "그러니까 다른 이야기를 원하신다?"
오카모토: "저..... 그건 아니고. 진짜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고 싶군요."
파이: "뭔가 말하면, 어쨌건 이야기가 되지 않나요?"
오카모토: "저...... 영어에서는 그렇겠지요. 일본어로 이야기라 하면 '창작'의 요소가 들어가게 되요. 우리는 창작을 원하지 않아요. 영어로 '직설적인 사실'만 원하죠."
파이: "무엇에 대해 말하는 것은-영어든 일본어든 언어를 사용해서- 이미 창작의 요소가 들어 있지 않나요? 이 세상을 바라보는 것에도 이미 창작의 요소가 있지 않나요?"

내가 보는 것을 남에게 전달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이미 나의 해석이 결부될 수 밖에 없다. 위에서 얘기하는 '직설적인 사실'이라는 그 실체라는 것은 이미 그 순간, 찰나에나 있었던 것이지 누군가의 입을 통해서 구전될 시에는 이미 파이가 얘기하는 '창작'이라는 것이 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는 내가 동양철학에 대한 다른 책을 읽었을 때 느꼈던 것과 똑같은 것이다.

위의 대화는 파이가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전달했음에도 불구하고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던 일반적인 인간의 생각 때문에 나누게된 대화이다.(사실 나라도 못 믿겠다. 그러니 소설이지. ^^) 그러나 이런 대화 속에서 작가가 얘기하고자 하는 것들이 매우 진지한 메시지들을 담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대화 이후에 파이는 이 책에서는 가히 충격적이라고 할 만한 반전의 얘기를 하게 된다. ^^


반전

아마 영화로 나오게 되면 이 부분이 포인트로 잡아서 앞의 내용을 많이 수정하지 않을까 싶다. 이런 얘기가 나오리라고는 상상하지도 못했다. 진실을 얘기하는데 믿지 못하니 파이가 창작을 할 수 밖에. 그 창작이 반전이고 일반인들에게는 사실같은 얘기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가 없다. 반전의 내용이야 구구절절 얘기하지 못하겠지만 조금은 상상하기 힘들었던 부분이었다.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해냈는지 참 작가가 놀라울 따름이다.


리처드 파커

이 책에서는 매우 중요한 캐릭터 중에 하나가 바로 리처드 파커다. 리처드 파커는 호랑이의 이름이다. 사람이 아닌 호랑이라는 소리다. 조난 당해서 구명 보트에 같이 있기 전에는 매우 현실세계에서 우리가 인식하는 호랑이였지만 극한 상황에서 파이와 친구로서 지내게 되는 호랑이다. 그만큼 극한 상황에서는 인간과 동물이라는 이분법적인 사고로 나눌 것이 아니라 모두 다 동물이 되는 것이리라.

서로에게 의지하면서 살 수 밖에 없는 상황 속에서 파이가 견딜 수 있었던 것 또한 리처드 파커였고 그 조그만 구명 보트에서도 서로의 룰을 지켜가면서 존중해주는 하나의 인격체 역할을 한 호랑이다. 분명 파이 가족이 인도를 떠나오기 전에 호랑이가 어떤 존재인지를 가르쳐주었다. 그러나 구명 보트에 있는 호랑이는 그런 존재와는 거리가 멀다. 그만큼 구명 보트라는 제한된 공간 속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현실계가 아닌 환상계로 봐야할 듯 하다.

나중에 멕시코에서 구조되기 전에 리처드 파커와는 헤어진다. 환상계에서는 친구였지만 다시 현실로 돌아가야 하는 찰나에 자연으로 돌려보내기 위해서 그런 것이다. 사실 이 때문에 파이의 얘기를 사람들이 믿어주지 않았던 것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반전 이야기에서는 리처드 파커가 파이 자신과 동일시 되어 표현된다.


끝으로

올해 처음 읽은 소설이다. 소설과 영화가 다르다는 것을 모르는 내가 아니다. 단지 나는 주어진 시간 이내에 받을 수 있는 감동을 영화로 선택했을 뿐이다. 이 또한 효율성을 생각해서 선택한 지극히 이성적인 판단이다. 소설과 영화가 다르다는 것 또한 뇌가 어떻게 사고를 하는지에 기인해서 다르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만큼 나는 지극히 이성과 지성을 존중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세상은 그런 것만으로는 해석이 되지 않는다. 그것은 과학을 들여다 보면 그렇다. 공부해보면 볼수록 신이란 존재를 긍정할 수 밖에 없는 영역이 과학이다. 그런 의미에서 읽었던 올해의 첫번째 소설인데, 나름 많은 생각을 갖게 되어 내게는 더없이 좋았던 시간이었다. 물론 독서토론에 참여할 때는 다 읽지 않은 상태에서 참여해서 이런 저런 얘기를 많이 할 수 없었던 아쉬움도 있지만 말이다. ^^

내가 소설을 많이 안 읽어봐서 이 책을 추천할 만한 책인지는 모르겠다. 뭐 워낙 유명한 소설인지라 알 만한 사람은 알겠지만 적어도 나처럼 소설하면 역사소설이나 읽는 사람이 그냥 일반 소설을 읽어보려고 한다면 추천한다. 꼭 역사소설을 읽어야만 느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이 소설을 통해서 처음 알았다. 물론 이런 느낌 또한 내가 해석한 것에 지나지 않지만 말이다. ^^